십자가의 날 – 고난주간 금요일

십자가의 날 – 고난주간 금요일
새벽 어둠을 깨우는 발걸음,
대제사장의 뜰에서 심문이 시작된다.
거짓 증언과 침묵 속에서
진리의 왕은 묶인 채 서 계신다.
“이 사람을 어떻게 할까?”
빌라도의 손에 쥐어진 운명,
군중은 외친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
그 외침이 메아리쳐 하늘에 닿는다.
가시면류관이 이마를 찌르고,
채찍이 등을 찢어 피가 흐른다.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걸어가신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고통 속에서도 용서의 기도가 흘러나온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왼편과 오른편, 죄인들과 함께,
조롱 속에서도 한 영혼을 구원하시며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마지막 순간에도 사랑을 베푸신다.
너희 눈에 보이지 않는가?
피로 물든 길 위에서
사랑은 짓밟혔고,
진리는 조롱받았네.
오, 사람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생명을 죽이는가.
그 손이 병든 자를 고쳤거늘,
그 입이 진리를 가르쳤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그를 십자가에 못 박는가.
바람마저 숨죽인 이 언덕에서
피로 쓰인 사랑의 고백,
그것이 너희 눈에 보이지 않는가.
죽음, 그러나 끝이 아닌 시작
“다 이루었다.”
그 한마디와 함께
세상은 어둠에 덮이고,
성전의 휘장은 찢어진다.
로마 백부장은 무릎을 꿇고
말없이 하늘을 바라본다.
이것이 정말 끝일까?
이 죽음이 정말 패배일까?
제자들은 두려움 속에 숨고,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지만,
무덤 속에 안치된 주님의 몸은
아직도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 죽음이 끝이 아님을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었음을
아무도 아직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묻는다.
오늘, 우리는 이 십자가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진리를 외면한 군중이 될 것인가,
아니면 십자가의 사랑을 붙잡을 것인가?